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새소리와 따뜻한 햇살에 남자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오늘따라 눈도 안 떠지고 이불 속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마 오늘이 몇 안 되는 휴일이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하는 찰나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과거에 맡았던 냄새를 느꼈는데 두 번 다시는 맡을 수 없는 냄새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와 버렸다. 얼마나 그리워하면 이런 냄새를 맡았다고 착각하는 걸까 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자신이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했다. 왜냐하면 어떤 한 여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자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방금 자신이 착각이라 느꼈던 냄새의 주인과 냄새를 비롯해 모든 것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냄새의 주인은 과거 자신이 실험체일 때 유일하게 자신을 실험체가 아닌 인간대우를 해주고 죽을 위기에 처했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을 구해주다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볼 수 없다.

  ‘드디어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아직 꿈에서 못 벗어난 걸까..’

  남자는 멍하게 여자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볼을 잡아당겨봤다. 볼에 아픔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아픈데.. 혹시 모르니까 세수라도 하면 잠이 깨려나..?’

  남자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9시 21분이었다. 세수를 하기위해 화장실로 가던 중 냉장고 문은 활짝 열려있고 그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의문의 존재를 발견했다. 남자는 냉장고 쪽으로 다가가서 의문의 존재를 잡아들었다. 그것은 밝은 회색머리를 한 인간형태의 어린 웨어울프였다. 웨어울프는 남자를 보더니 반가움을 표시하듯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더니 먹던 것을 멈추고 큰 소리로 말했다.

  “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때보다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남자는 한동안 멍하니 있더니 빨리 꿈에서 깨는 게 좋겠다며 중얼거리며 웨어울프를 바닥에 내려놨다. 꿈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죽은 동생과 모든 것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과거 자신이 실험체로 끌려갔을 때 동생도 같이 끌려가서 같이 실험체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무자비한 실험을 당하다 버티지 못하고 결국 동생은 죽었다. 죽은 동생과 똑같이 생긴 웨어울프가 자기를 형이라 부르다니 꿈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웨어울프는 여전히 있었고 침대에서 자고 있던 여자는 눈을 비비면서 안방을 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발견하자 웃으며 남자의 이름을 불러 아침인사를 했다.

  “키벨, 좋은 아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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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너희는 이미 예전에..”
  “그것보다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 여긴 우리 세계랑 다른 게 많아서 신기해, 구경시켜줘!”
  “맞아, 형! 빨리 밖에 구경시켜줘! 놀고 싶어!”

  릴리스와 사드의 머릿속은 이미 놀 생각으로 가득차서 키벨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지금 상황이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차라리 이게 현실이면 좋겠다고, 동생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을 구해준 여자가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오히려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순간은 아무생각 없이 그저 즐기며 행복함을 느끼고 싶었다.

  “..기다려, 준비하고 올 테니까”

  키벨은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과 지갑 등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도중에 탁자 위에 있는 달력에 문득 시선이 갔다. 손목시계를 차면서 오늘 날짜를 확인하니 2021년 10월 31일이었다. 키벨은 릴리스와 사드를 대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릴리스와 사드는 길거리의 모든 것이 처음인 듯 주위를 둘러보며 신기하다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좋아하는 모습과 비슷해보였다. 둘의 모습을 보고 키벨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아마 둘의 모습이 귀여워서일까.

  “뛰지 마, 길도 모르면서”

  릴리스는 호기심이 정말 많아 길을 걷는 내내 질문을 계속 했다. 자동차, 음식, 놀이 등 자기가 처음 보거나 흥미가 있는 건 바로바로 질문했고 그걸 하나하나 다 대답해주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다. 아마 연구원일 때도 질문이 많아 주위사람들이 피곤해 했을지도 모른다. 구경한다고 힘을 다 써서 배고파진 건지 사드는 뭔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주위에 음식점이나 먹을 만한 게 있는 게 둘러보던 중 양식당이 보이 길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는 할로윈에 맞춰 호박 및 유령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소품으로 내부를 꾸며놓았다. 평소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키벨은 가장 구석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메뉴판을 보여주며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니 릴리스와 사드는 손가락으로 음식 그림을 찍으며 메뉴를 골랐다. 직원을 불러 음식 다섯 개를 주문하니 릴리스가 의아한 듯 물었다.

  “3명인데 왜 메뉴는 5개야?”
  “내가 배고파서”

  키벨은 무덤덤하게 대답하며 주문을 마쳤다. 약 30분 뒤 음식이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했다. 릴리스가 고른 토마토 파스타, 사드가 고른 레어 스테이크 그 외의 세 가지 메뉴는 고르곤졸라, 목살 필라프, 레어 스테이크였다. 각각 음식들은 할로윈에 맞춰서 플레이팅 돼 있었다. 사드의 스테이크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주었다. 그렇게 잘라주지 않으면 분명 스테이크를 통째로 잡고 뜯어먹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르곤졸라는 각자 앞접시에 하나씩 놔주며 꿀에 찍어먹으면 맛있다고 설명해줬다. 사드는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어보더니 입맛에 맞았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릴리스 또한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기분 좋은 얼굴로 먹기 시작했다. 키벨은 안심하고 자신도 식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조금 넘게 식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다른 해보고 싶은 거 있냐고 물으니 시원하거나 새콤한 먹고 싶다고 릴리스가 말했다. 길 따라 걷다보니 카페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카페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유령모양의 벽시계가 보였다. 14시 10분이었다. 이 카페 또한 할로윈에 맞춰 내부가 꾸며져 있었다. 릴리스는 딸기 스무디를 골랐고 사드는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하기에 초코라떼를 골라줬다. 키벨은 블루베리 스무디와 레드벨벳 케이크, 초코케이크, 마카롱 3개를 주문했다. 이후 직원이 주는 진동벨을 받아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릴리스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그렇게 먹고 배 안 불러? 다 먹을 수 있어?”
  “먹을 수 있어, 내가 디저트 좋아하거든”
  “근데 이건 뭐야? 아까 그 사람이 준 거”

  릴리스는 진동벨을 보고 질문하길래 이게 울리면 우리 음식이 나왔다는 신호라고 설명해줬다. 이후 진동벨이 울렸고 주문한 메뉴들은 받아왔다. 레드벨벳 케이크 위에 해골 손 모양의 작은 쿠키가, 초코 케이크는 호박모양의 초콜릿이 올라가 있었다. 마카롱도 호박의 웃는 표정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사드는 달달한 게 자기 취향에 맞았는지 마치 귀가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먹었고 릴리스 또한 음료를 마시면서 역시 딸기는 배신하지 않는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먹었다. 마카롱과 케이크들도 두 사람의 입맛에 맞은 듯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못 먹을 것처럼 말하더니 릴리스가 케이크 대부분을 다 먹었는데 여자들은 밥배랑 디저트배랑 따로 있다더니 그 말은 진실인 것 같다. 그래도 행복하게 먹어서 다행이었다. ( )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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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를 나오고 이제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사드가 배부르니 졸리다며 집으로 먼저 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사드는 오늘 하루 형을 만나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신기한 것도 많이 보고 형이 잘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고 사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웨어울프는 후각이 기본적으로 뛰어나지만 사드의 후각은 우리 종족 중에서 가장 뛰어났었다. 그래서 길은 잃어버릴 걱정은 없기 때문에 사드를 잡지 않았다. 사드를 보내고 나니 릴리스가 귀를 만지는 모습을 보이길래 왜 그런지 물었다.

  “원래 귀걸이 끼고 있었는데 언제 잃어버렸는지 귀가 허전해서~”

  맞다. 원래 릴리스는 과거에 귀걸이를 끼고 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보니 귀걸이가 없다.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텐데. 시간을 확인해보니 16시 1분이었다.

  “귀걸이 보러가자 사줄게”
  “아냐, 괜찮아! 나중에 또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냥 이대로 있지 뭐”
  “잃어버리면 그때 또 사줄게, 이왕 예쁠 거면 더 예뻐야지”

  릴리스는 예쁘다는 말에 살짝 흔들리는듯하더니 오케이 했다. 귀걸이를 직접 사본 적이 없어서 핸드폰으로 가게 위치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가게에 들어가니 수많은 귀걸이가 진열 돼 있었다. 릴리스는 보석이라도 찾은 듯이 귀걸이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좋아하면서 왜 거절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저런 모습이라서 더 귀여운 걸지도 모르겠다. 릴리스가 귀걸이를 구경하는 사이 할 것도 없으니 귀걸이 구경이나 해볼까 싶은 마음에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날개 모양의 귀걸이를 발견했는데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날개모양 귀걸이를 가지고 릴리스가 있는 곳에 가니 릴리스는 귀걸이를 아직 못 정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조용히 옆에 가서 뭐해 라고 물으니 릴리스는 마음에 드는 게 여러 개라서 못 정했다고 말했다. 키벨은 손에서 귀걸이를 보여주면서 이건 어떠냐고 묻자 릴리스는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키벨은 귀걸이를 릴리스 귀에 가져다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응 예쁘다( ).”

  릴리스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서둘러 몸을 돌려서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 귀여움에 키벨은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귀걸이를 계산하고 가게를 나올려는 데 조명을 받아 생겨야하는 릴리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다는 걸 봐버렸다. 그제서야 문득 깨달았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계속 자신을 속이며 외면해왔을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림자가 생겨야하는데 릴리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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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슬슬 해도 지고 길거리도 어두워졌다. 릴리스가 안 해본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길 건너편에 있는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으로 영화상영표를 확인하니 지금 볼 수 있는데 공포영화 또는 로맨스 영화밖에 없었다.

  “영화 보는 거 좋아해?”
  “영화? 좋아하지! 특히 로맨스 좋아해!”

  상영시간을 확인해 보니 로맨스 영화는 18시 45분이라서 아직 시간은 여유로웠다. 우선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데 좋은 자리는 대부분 안 되고 남아있는 좌석 중에서 가장 괜찮은 자리를 두 자리 예매했다. 그때 키벨은 여기서 5분만 걸으면 분수가 예쁜 공원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릴리스를 데리고 공원으로 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아까 샀던 귀걸이를 주면서 어서 껴보라고 했다.

  “아까 귀 허전하다며, 빨리 껴봐”

  릴리스는 키벨의 재촉하는 모습이 큰 강아지처럼 보여서 귀여웠다. 릴리스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귀걸이를 착용했다.

  “어때? 잘 어울려? 예뻐?”
  “응 잘 어울려, 예뻐”

  릴리스는 키벨의 모습이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았기에 그런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키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잘 쓸게! 진짜 절대 안 잃어버릴게”
  “아냐, 잃어버려도 다시 사줄게 걱정 마”

  키벨의 꼬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꼬리가 나왔다면 격하게 흔들어 대고 있었을 것이다.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니 18시 30분이었다. 두 사람은 영화관으로 향했고 제 1관으로 안내 받았다. 몇 분 후 영화가 시작됐고 두 사람은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중간에 헤어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몇 년 후 두 사람은 다시 제회하게 되고 결국에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결말이었다. 약 3시간 반 정도 영화를 관람하고 난 후 두 사람은 영화관을 나왔는데 영화가 끝난 후에도 릴리스는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어떤 부분이 기억에 잘 남았는지 등 여러 가지 이야기했다. 키벨도 영화가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 마음 한편에 거리는 것이 있었다. 만약 오늘이 지나간다면 릴리스도 사라져버릴 것일까 하는 생각일 것이다. 릴리스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신나있는 모습만 보인다. 그런 모습에 키벨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다. 저 너무나 해맑은 모습이 마지막 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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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집으로 들어갈까 라고 말하려고 한 순간 릴리스가 아까 갔던 공원에서 산책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짜피 이 지금 집에 들어가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좋다며 공원으로 향했다. 아까보다 어둠이 더 짙어졌기에 달빛 또한 깊어졌다. 문득 날씨가 쌀쌀해졌다는 게 느껴져 입고 있던 겉옷을 릴리스에서 덮어주었다.

  “고마워! 센스 좋은데?”

  릴리스는 키벨의 겉옷을 입으며 능청스럽게 물어봤다.

  “여자한테 인기 많겠네, 이런 센스라면 어떤 여자가 안 좋아 하겠어”
  “..아무한테도 안 해줬어, 네가 처음이야”

  릴리스는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한다. 무슨 의도로 말했던 걸까
 
 “그래? 영광이네 내가 처음이라서”

  릴리스는 신난 모습으로 키벨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말해주었다.

  “오늘 하루 진짜 재미있었어! 이런 신기한 세계에 와서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잃어버렸던 귀걸이도 다시 사고 재미있는 로맨스 영화까지 보다니! 너무 좋았어!”
  “나도 그래, 두 번 다시 널 못 보는 줄 알고 살았는데 이렇게 또 보다니”
  “그러게, 나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근데 나 곧 있으면 가야 해.. 00시에 저승과 이승의 문이 끊어질 거야”

  키벨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짐작했던 게 빗나가길 바랐다. 맞지 않기를 빌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22시 52분이었다. 약 1시간 후에 이별이라니..

  “..할로윈은 매년 있으니까 매년 볼 수 있지?”
  “아마 몇 년 동안 못 볼 거야, 내가 힘을 너무 많이 써서 한동안 힘을 모아야하거든..”
  “힘을 많이 썼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죽을 때 너를 다른 세계로 랜덤워프 시켜서 네가 어떤 세계로 갔는지 몰라서.. 그걸 찾는다고 힘을 다써버렸거든.. 그래도 10년 만에 찾아서 다행이야 영영 못 찾는 줄 알았는데”

키벨이 이 세계로 넘어온 지 올해로 10년째 되었다. 그렇다면 릴리스는 10년 동안 수많은 세계를 워프하면서 키벨을 찾았던 것이다. 세계가 얼마나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건 릴리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릴리스에겐 그저 키벨을 찾는 것만 중요했다.

  “..너 바보야? 그냥 나 같은 거 잊어버리면 되지 뭐 하로 세계를 다 찾은 거야 힘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릴리스는 키벨의 얼굴을 잡고 이마를 맞대었다.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기억해? 너 워프 시키는 동안에 했던 말”
  “..어떻게 잊어버리겠어, 너의 마지막 말인데.. 인간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그 말”
  “맞아, 잘 기억하고 있네? 오늘 보면서 알았어. 내가 한말을 잘 지켜주고 있구나.. 인간에게 상처 입었지만 인간 속에 섞여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는구나..라고”

  릴리스는 잠시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너한테 또 다른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뭐냐면..”

  키벨은 맞대고 있던 이마를 때면서 릴리스가 하려던 말을 가로챘다.

  “..사랑해”

  릴리스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눈물이 또르륵 하고 흘렀다.

  “아 뭐야!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었는데 왜 가로채 가!!”

  릴리스는 우는 모습을 들키기 싫은 지 얼굴을 급하게 가려보지만 이미 키벨은 봐버린 것 같다. 릴리스의 투덜거리는 모습에 키벨은 나직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예전에 말했어, 고백은 여자가 하게 놔두면 안 된다고”
  “짜증나 진짜.. 아까 로맨스 영화 괜히 봤어! 아까 영화랑 너무 반대되잖아 우리는..”

  아까 영화를 보고난 후 마음이 답답한 이유를 알았다. 아니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중간에 이별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뒤 다시 재회하여 결국 사랑에 성공하는 스토리와 달리 자신들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잠깐이나마 느꼈던 오늘의 행복한 시간조차 곧 있으면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진짜 곧 있으면 헤어질 시간이네..”

  키벨은 릴리스의 말을 듣고 시간을 확인했다. 00시까지 20분 남았다. 키벨은 어떻게 하면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핸드폰 카메라를 셀카모드로 키고 릴리스를 한 팔로 품에 앉은 다음 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에 찍는다고 담길까..? 난 유령인데..”
  “담기길 빌어야지, 그리고 안 담겨도 상관없어 지금 내가 널 느끼는 걸로 충분해”
  “진짜 말은 잘해요..”
  “한 번 더 찍을 거야 하나.. 둘..”

  키벨이 셋이라고 말하는 순간 릴리스는 키벨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키벨은 잠시 멍하니 있는가 싶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릴리스에게 따지려고 말은 하는데 버벅거려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릴리스는 장난꾸러기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백은 네가 뺏어갔으니 첫 뽀뽀는 내가 가져갈 거야, 이걸로 비긴 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쪽 귀걸이를 빼서 키벨의 손에 쥐어줬다.

  “하나는 네가 가지고 있어줘, 다음에 널 만나러 이승에 왔을 때 바로 찾을 수 있게”

  키벨은 릴리스를 바라보는데 릴리스의 몸이 점점 투명해져가고 있었다. 마치 이제는 떠나야한다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키벨이 덮어줬던 겉옷을 돌려주면서 릴리스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몇 년 뒤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봐 키벨”

  키벨이 릴리스를 붙잡으려는 순간 누군가 키벨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쳐 기절시켰는데 그 사람은 바로 사드였다.
  사드는 기절한 키벨을 등에 업고 집으로 가서 안방의 침대까지 옮겨주고 잘 있어 라는 말을 남기고서 릴리스와 함께 달빛을 따라 저승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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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벨이 눈을 뜨자마자 느끼는 첫 느낌은 머리의 고통이었다. 어제 릴리스를 붙잡으려는 순간부터 기억이 없는데 눈 떠보니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집안을 다 찾았다. 릴리스와 사드의 이름을 부르며 두 사람을 찾았지만 집에는 그 어떤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키벨은 어제 릴리스와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기위해 핸드폰 갤러리를 들어갔다. 하지만 사진에 찍힌 건 공원에서 혼자 셀카를 찍은 본인뿐이었다. 자신에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릴리스가 없었다. 사진에 안 담겨도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담기길 빌었다. 어떻게든 릴리스와 함께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 그것조차 허락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제 모든 것은 다 꿈이었나, 내가 만들어낸 허상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침대 옆 책상위에 햇빛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귀걸이였다. 어제 자신이 릴리스에게 준 귀걸이와 똑같은 날개모형 귀걸이 한 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키벨은 귀걸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귀걸이가 어제의 모든 일은 꿈이 아니라고 증명해주는 증표이자 너와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될 테니까.

키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몇 년이 걸리든 상관없어. 기다릴게 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