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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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하긴, 10월도 다 되어가나. 곧 겨울로 접어들 즈음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 것이 곧 실수였다. 추위에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있으면 누군가 따뜻한 어투로 물어온다. 춥느냐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려 한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거절하면 쪼물딱거리는 손을 멈추고 괜찮겠냐는 듯이 바라본다. 그럼 괜찮지, 가볍게 두 팔을 들어올리면 그재서야 안심하는 얼굴로 돌아온다. 어제도 보았던 얼굴일 텐데, 왜인지 무척 그립다.

  10월 31일, 기억상 분장을 하고 장식된 집에 찾아가면 사탕 등을 얻을 수 있는 날이었다. 바로 작년에도 했던 일일 텐데 기억을 더듬는 것이 꼭 오랜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과 같았다. 어쩐지 즐긴다는 기분도 참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 고작 이런 나이인데도.
시선을 아래로 내려 제 손과 발, 몸을 차례로 바라본다. 어린 나이의 그것이었다. 손은 작고, 아직 온갖 수난을 겪어보지 않은 듯했다. 가장 아래에 자리한 발과, 그 위로 연결된 몸도 마찬가지. 시선이 낮아 땅의 것은 잘 보였으며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너무나도 커 보였다. 이상하다, 세상은 언제나 이러한 모습이었을 텐데. 늘 같았을 세상이 이상해 보였다.
  악귀들이 내려오는 날이랬던가. 어디선가 습득한 정보에 따르면 그런 전승이 있다지.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바로 옆에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악귀들이 손을 쓰면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들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빨리 돌고 집 가서 사탕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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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려오는 목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노란 눈을 반짝이며 들뜬 듯 방방 뛰고 있는 아이는, 닮은 구석이 붉은 머리 정도밖에 없는 내 동생이었다. 원래 저렇게 들뜬 아이였던가? 좀 더 차분하지 않았나? 오히려 더 들떠야 했던 건 내 쪽이었던 것 같은데. 왠지 반대가 되어버린 듯한 상황에도 동생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 자연스레 행동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대답이 없으니 오히려 그쪽에서 나를 잡아끈다.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첫 번째 집 문을 두드렸다. 예의 말을 외치니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사탕 안 주면 장난칠거야,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듯 싶었다. 문 밖으로 나온 건 포근한 인상의 집 주인이었다.

  “어머, 이번엔 유령과 좀비구나?”

  그의 말에 이제야 분장이 눈에 들어왔다. 유령은 내 쪽, 좀비는 동생 쪽. 그야말로 무덤 조합이었다. 잘 어울린다고 웃으며 들고 있는 바구니에 사탕을 담아준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진 사탕들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탕을 얻고 다른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 예의 말을 하고, 사탕을 받으며 어른들이 던지는 몇마디 듣기를 반복. 톱니바퀴 같았다. 돌아다니는 내내 가시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에 멍한 상태를 유지하는 나에게 나답지 않다며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나답지 않았나. 애초에 나는 어땠더라. 의미도, 대답해 줄 사람도 없는 무의미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아무것도 없는 벽에 의문을 계속 던지고, 돌아오는 같은 의문을 받다 보면 어느새 사탕 바구니는 가득 차 있다.
  한 손으로도 가벼이 들던 바구니는 얻은 사탕만큼의 무게를 가져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이 나이로 이런 무게의 사탕을 들면 제법 힘에 부칠 텐데도 문제 없다는 듯이 번쩍 들고 있는 육체가 이상했다. 동생 쪽을 흘겨보면 제법 힘들어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면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의 것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나. 도움을 받아도 좋을 텐데. 끝까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 우습다.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온다. 동생은 오자마자 바닥에 사탕을 펼쳐두고 받은 사탕의 개수를 세었다. 많이 받았다며 방긋 웃는 얼굴이 나름 귀엽다. 하루에 한 개씩 먹어도 금방 동날 것 같다는 말에 침울해하자 내가 가진 사탕을 전부 얹어주었다. 눈앞으로 쏟아지는 사탕들에 놀라면서도 기쁘게 받아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내 동생의 모습이었다.
  집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어색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느낀 집이라는 곳은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어제와 오늘 사이 큰 공백이 생긴 기분이었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인데 그 사이 잃어버린 시간이 공허하게 떠 있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마치 할로윈이라는 날만 따로 분리된 그런 공허함, 생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생전?

  자연스레 떠오른 말에 의문을 가진다. 그럴 수 밖에 없나. 애초에 지금을 살고 있는데 생전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물에 뜨듯 떠오른 단어는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하나의 의문이 여러 가지를 깨부수고 뇌의 안쪽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원래 이렇게 생각이 많았었나, 원래 이렇게 평화로운 환경에서 살았던가, 애초에, 원래 이 나이에 할로윈을 즐기며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녔던가? 대략 열 살 즈음의 나는, 뭘 하고 있었더라…
  동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굳었나. 그랬겠지. 신경쓰지 말라고 말하며 동생을 바라본 직후, 놀람을 감출 여유도 없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당황하고 말았다.


  세상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동생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두워 보인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누군가 그 부분만 검게 칠한 것 같은. 그것을 시작으로 집 전체가 일렁이더니 녹아내렸다. 집이 녹아내리나? 아니다. 세상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데 전달되지 않았다. 애초에 동생의 목소리는 뭐였지, 어떻게 생겼더라. 눈 색은, 보라색이었나? 눈꼬리는 내려갔었나, 올라갔던가. …그의 이름은?

  눈을 깜빡이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동생이 아니었다.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느니 뭐하느니의 문제가 아니었다, 큰 사람, 성인. 어쩌면 나에겐 이쪽이 더 익숙할지 모르는, 다 큰 어른의 모습. 전부 녹아내려 검음밖에 남지 않은 공간에서 그 사람은 나를 보며 웃었다.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냥 웃고 있었다. 나를 향해 웃더니,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귀를 찢고 지나가는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스러지는 그 모습에도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 이제야 알겠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보여준, 존재하지도 않았던 날의 꿈.
  그저 허상.

  눈을 뜨자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거슬리게 들려온다. 절그럭거리는 사슬의 끝에는 나의 팔이 달려 있었다. 꿈의 마지막에 당도했던 그 검은 공간에, 성인이 된 나는 묶인 채로 갇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올리면 파란 머리의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그가 나에게 꿈을 보여준 거겠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자였다.

  “할로윈은 잘 즐기고 오셨는지? 뭐, 그 얼굴을 보면 아닌 모양이네요.”
  “너라면 내가 꾼 꿈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궁금한데.”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라도 저와 동급인 자의 꿈을 함부로 읽을 수는 없답니다. 꿈을 꾸게 한 건 저이지만 그 속의 내용을 채우는 건 당신이니까요.”
  “허, 그럼 이런 꿈을 꾸게 한 의도가 뭐지? 나의 죽음으로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사라졌을 텐데.”
  “뭘, 그냥 순수한 배려입니다. 악령인 척 즐기는 축제에 진짜 악령이 끼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저는 당신이 제대로 즐길 수 있게 악령이 되기 전의 꿈을 꾸게 해 드린 것 뿐입니다.”
  “그 참신한 헛소리도 슬슬 익숙해지려고 한다.”
  “후후, 그것 참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니 슬프군요. 다음에는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조정해보도록 하지요.”

  쿡쿡 웃으며 그가 사라진다. 다음에도, 라. 생전 즐기지 못한 만큼 즐기게 해주겠다는 뜻인가. 자그마치 200년 분이었다.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켜보는 게 즐거우니 그런 것이겠지. 꿈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다 거짓일 것이다. 재미를 위해서는 가리지 않는 자가, 여기서 그만둘 리 없었다.


  ...아무래도 할로윈은 이제야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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